오랫동안 많은 판결문을 접했고 번역했지만, 여전히 판결문 번역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판결에서는 결론(판결 주문)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 이 부분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번역해야 하고, 또 내용이 비교적 간단하고 정형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번역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판결의 주문 뿐만 아니라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관계에도 판결의 효력(전문용어로는 기판력이라고 합니다)이 미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판결 주문 뿐만아니라 판결 이유와 사실 관계도 정확하게 번역해야 하는데, 여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법원 판결문이 이해하기 어렵게 작성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미국 등 영미권 국가와 법체계가 매우 다르기 때문에 여기에서 비롯되는 번역의 어려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판결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관련되는 법률(민법, 상법, 형법 등의 실체법과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 등의 절차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영미의 법체계에 대한 이해도 갖추어야,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번역에 참고할 만한 모범 자료도 많은데, 법원도서관 웹사이트에서 중요한 대법원 판결을 외국어(영어, 중국어)로 번역하여 제공하는 자료도 그 중 하나입니다. 가끔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하면서 읽어보면 여러모로 공부가 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공부가 되는 것은 일을 맡아서 긴장감을 가지고 직접 번역하는 과정에서 익히게 되는 공부라고 해야겠지요.